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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한수영이 있는 시간대의 지혜남운입니다.

*한동안 원작을 보지 않아 캐붕이 심할 수 있습니다.

*김독자가 아직 오지 않았을 시점임을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히든 시나리오가 클리어 되었습니다.]

[24시간 뒤 자동으로 시작 지점으로 워프되며 시작 지점에서 클리어 보상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 뭐야. 벌써 클리어 됐어?”

 

방금까지 앞에 있던 거대한 토끼 형태를 한 몬스터가 입자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허망하게 바라보던 이지혜는 시야 끝에서 시작되는 카운트다운에 혀를 차면서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과연 한 두 번 검을 휘둘러 본 것이 아니라 무척이나 깔끔한 자세였다.

 

검을 집어넣은 후에도 아쉬운지 몇 번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던 지혜는 결국 후드티 주머니에 두 주먹을 찔러 넣고선 동료와 합류하기 위해 휘적휘적 걸었다. 지혜가 있던 무너진 거리 근처에 바로 합류 장소가 있었기에 빠르게 도착 할 수 있었다.

 

합류를 약속한 장소는 간신히 무너지지 않은 한 2층 주택이었다. 하얀 벽돌로 만들어진 그 집은 이곳저곳 무너져 있었고 벽돌 속이든 바닥이든 곰팡이와 잡초가 무성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좀 빨리 오긴 했지.’

 

지혜는 다시 봐도 더러운 집 안에서 그나마 깨끗한 부분을 찾아내어 털털한 자세로 앉았다. 이미 옷이 더러워지는 건 익숙해진 일이었다. 적당히 앉아서 기다리면 금방 오겠지, 생각했으나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30분이 지났음에도 집합 장소에는 누구도 오지 않았다.

 

‘뭐지? 뭔 일 있나? 시나리오가 클리어 되면 자동적으로 모든 괴수들은 소멸 할 텐데?’

 

어쩐지 조잡했던 히든 시나리오의 룰을 하나하나 안 좋은 기억력을 쥐어짜며 생각해 내던 지혜는 결국 생각을 포기했다. 아, 몰라. 뭔 일 있어도 알아서 잘 오겠지. 오지 않은 동료들 중에서 지혜가 걱정할 만한 실력을 지닌 이는 없었다.

 

‘…김남운 걘 너무 촐싹대서 걱정되긴 하는데.’

 

바로 저저번 시나리오에서 화룡을 토벌하다가 쓸데없이 폼을 잡으며 브레스에 뼈도 못 추릴 뻔 한 멍청한 백발의 소년을 생각하던 지혜는 남운도 꼴은 그렇지만 일단 제대로 된 실력자라는 것을 상기하며 눈을 감았다.

 

벌러덩 누웠지만 검집이 아직 허리춤에 차여 있기에 조금 불편했다. 하지만 불편하다고 무장을 해제하는 건 백치나 하는 짓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지혜는 조금 불편함을 감수했다.

 

맨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있자 멀리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족보행에 꽤나 빠르다. 실같이 뜬 지혜의 눈에서 귀기가 번쩍거렸다.

 

‘앞으로 8초, …4초, …2초, 지금!’

 

일어남과 동시에 검을 뽑아든 지혜가 침입자의 목 위로 날을 겨누었다. 침입자는 당황해서 뒤로 물러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허공에서 흔들리는 윤기 있는 백발을 어이 없게 바라보면서 지혜는 김남운에게 물었다.

 

“너 뭐하냐?”

 

“너, 너야말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알 바 아니고, 뭐야. 왜 너만 와? 다른 사람들은?”

 

“우씨…, 좀 걱정해 주면 어디 덧 나냐?”

 

엉덩이를 탈탈 털며 일어나는 남운을 노려보며 지혜가 대답을 독촉했다. 남운은 그에 과장되게 손을 흔들며 설명했다.

 

“꽃구경 가자.”

 

“하아, 그래. 너한테 제대로 된 대답을 바란 내가 죄인이다.”

 

“야! 아니, 잠깐만! 리더가 제안한 거라고! 다들 찬성했어!!”

 

지혜는 다급한 변명에 일단 검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씩씩대는 남운을 지나쳐 먼저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고개를 까딱였다. 어서 안내해, 라는 뜻이다. 그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남운이 툴툴댔다.

 

“아니, 왜 내 말은….”

 

“네 평소 행실을 잘 생각해.”

 

시나리오 진행을 하고 있을 때나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나,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제게 데이트를 신청하던 남운의 과거 행동을 비꼬며 지혜는 먼저 남운이 왔던 길을 따라 뛰었다.

 

“야! 잠깐만 기다려! 거기 아냐!! …왜 충무공은 저런 얘를 화신으로….”

 

“뭐라고?”

 

“너 예쁘다고.”

 

“허. 안내 해.”

 

남운은 금방 지혜의 뒤를 따라잡았고 그녀의 말에 순순히 따르며 앞장섰다. 지혜는 이제 어느 정도 남운의 고백에 익숙해진 건지 아무렇지 않게 그의 뒤를 따라 뛰었다.

 

둘이 얼마만큼 뛰었을까. 아마 그리 오래 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혜는 점점 주변 풍경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챘다.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이 점점 사라지고 예쁘게 자란 나무와 풀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탁 트인 화창한 하늘 아래 분홍색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오-.”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다. 지혜는 뿌듯해 하며 코를 긁적이는 남운을 보며 말했다.

 

“이거 네가 찾은 곳 아니지.”

 

“…내가 찾았거든?”

 

“헐. 진짜?”

 

“진짜. 내 피로 물든 보름달에 맹새-.”

 

“입 닥쳐. 그런 것까지 듣고 싶지 않아. 그래도 김남운 너 치고는 잘했네.”

 

가볍게 잔디를 밟고 걷으며 지혜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 보았다. 녹색 잔디가 촘촘히 자란 땅바닥은 기분 좋게 촉촉했고 잔디밭을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는 나무는 모두 벚나무였다. 모두 꽃송이가 만개해 있었고 가지가 얇고 넓게 퍼져 있어 보기만 해도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지혜는 홀린 듯 벚나무의 근처로 다가갔다. 엄청 오래된 것 같이 나무의 기둥은 껍질이 선명했다. 그 기둥을 몇 번 만져보다가 축 꽃이 너무 많아 축 늘어진 가지에 있는 벚꽃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남운은 지혜의 그런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예쁘다….”

 

“핫, 내가 좀 열심히 찾아 다녔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유승 언니랑 리더는? 현성 오빠는? 다 어디 있어?”

 

“아….”

 

남운이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며 말을 늘어트렸다. 그 얼렁뚱땅 넘겨버리려는 모습에 지혜의 미간이 구겨졌지만 잠시 후 다시 풀어졌다. 남운은 그 변화에 놀라 버벅거리면서 소리쳤다.

 

“화, 화 안, 안 내?!”

 

“화가 나긴 났는데 벚꽃이 너무 예뻐서 다 식어버렸어. 너 진짜 운 좋은지 알아. 이렇게 봐주는 건 정말 한 번이다.”

 

“으, 응! 더 깊이 들어가자! 그곳에 가면 내 피로 적신 듯 붉은-,”

 

“시끄러워.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가기 싫어지잖아.”

 

“미안….”

 

입을 나불대다가 지혜에게 일침을 맞은 남운이 시무룩해졌다. 축 쳐진 고개와 어깨를 쯧쯧 혀 차며 바라보던 지혜는 먼저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벚나무들의 안쪽이었다.

 

“뭐해. 안 와? 네가 가자며.”

 

“가 주는 거야?”

 

“가장 예쁜 벚나무 있다며. 그럼 봐야지. 너 따위의 한 마디 때문에 안 보기에는 아깝잖아?”

 

지혜의 독설에도 불구하고 같이 가준다는 게 그렇게 기쁜지 남운은 활짝 웃으며 그녀를 앞질러 뛰었다. 지혜는 약간 개새끼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 말 없이 남운의 뒤를 따라가 주었다.

 

눈으로 보기에 백 그루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밝은 벚나무의 사이를 천천히 걷는 두 사람의 위로 새하얀 벚꽃이 하늘하늘 떨어졌다. 지혜는 멍청하게도 벚꽃잎을 떼지도 않고 걸어가는 남운을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결국 보다 못해 그의 머리카락을 세게 흐트러트리며 벚꽃 잎을 떼어주었다.

 

“으이그. 좀 혼자해라.”

 

“…지혜야.”

 

“또 사랑한다느니 헛소리 하면 걷어찬다.”

 

“미안. 사실 벚꽃이 너무 예뻐서 벚꽃이 예쁘다고 말하려고 했어.”

 

“허, 앞에 사과는 뭔데.”

 

지혜는 차마 변명을 생각해 내지 못해 우물쭈물 거리는 남운의 앞을 스쳐지나갔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푸른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알차게 핀 벚꽃이 보였다. 마치 나비 같이 떨어지는 작고 새하얀 꽃잎도 보였다. 지혜는 벚꽃의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찬란한 햇빛에 눈을 찌푸리다가 자신이 설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라도 설렐만한 상황이다. 낙원 같은 모습을 한 벚나무의 향연과 평화로운 햇살. 누구라도 과거의 일상을 생각하며 흔들릴 것이다. 그래서 조금 감성적이게 되어버린 걸까. 아니면 그냥 물러져 버린 걸까.

 

지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귀만을 솔직하게 물들인 채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뭐, 나쁘지 않아. …정말 잘했어, 김남운.”

 

코인과 갖은 시나리오로 인해 모든 감각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남운의 귀에 그 작은 중얼거림이 안 들릴 수가 없었다.

 

남운의 벚꽃처럼 하얗던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갔다. 솔직함의 색이다. 지혜의 귀는 이미 터질 듯이 빨갰다.

 

그런 둘의 위로 축복하듯이 색이 있는 벚꽃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보통의 벚꽃과는 달리 수줍은 분홍을 띈 꽃잎이 강한 바람을 타고 춤을 추며 둘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분홍이었지만, 그렇지만 분명 그 꽃잎의 색은 빨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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