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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시나리오가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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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시나리오 #803-꽃놀이>
분류: 서브
난이도: ??
클리어 조건: 성좌들이 한반도의 화신들을 위해 개연성을 모아 '유중혁-김독자 공단'에 봄을 내려주었습니다. 만개한 벚꽃에서의 꽃놀이를 정해진 파트너와 함께 마음껏 즐기십시오.
제한 시간: 없음
클리어 보상: ??
실패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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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데없는 꽃놀이였다. 꽃놀이...? 갑자기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달쯤 전이 제 생일-확실하지는 않지만-이였으니 이즈음이면 봄인 게 맞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멸망한 세계 속에서 꽃놀이를 마음껏 즐기라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시나리오 자체도 조금 특이했다. 분류와 클리어 조건 이외에는 나온 정보도 없고, 심지어 클리어 조건은 상당히 모호했다. '정해진 파트너와 함께 마음껏 즐기십시오.' 뿐인 시나리오에 김독자는 한숨을 쉬며 다시 한 번 꼼꼼히 시나리오를 읽었다.
 클리어 조건에 적혀있는 성좌들이라는 내용과, 서브 시나리오를 보고 도깨비가 공단에 내린 시나리오임을 깨달은 김독자는 주변을 빠르게 둘러봤다. 당황한 듯한 일행들의 사이에는 낯익은 도깨비 하나가 점점 투명해져 가고 있었다. ... 비형. 애초에 이런 일을 벌일 도깨비는 비형밖에 없었지만.
 도깨비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던 김독자는 옆에서 느껴지는 흉흉한 시선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제 옆에는 잘생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저를 노려보는 유중혁이 있었다. 내가 또 뭘 잘못했다고! 억울한 마음에 김독자는 유중혁과 함께 서로 노려보다가, 이내 무언가가 떠올라 황급히 시나리오 창을 확인했다.
 ... 젠장! 왜 하필이면 얘야? 김독자는 한숨을 쉬며 시나리오 창을 뚫어질 듯 쳐다봤다. 유중혁-김독자, 파트너 명단의 제일 위에 적혀있는 둘의 이름이였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뿌듯하게 웃어 보입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자신의 개연성을 소모한 결과이니 마음껏 즐겨주기를 바랍니다!]
 김독자는 계속 이어지는 간접 메세지 창을 보며, 처음으로 에덴의 멸망의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유중혁."
"......"
"야, 유중혁! 다들 나갔는데 우린 안 나가냐?"
"굳이 이런 시나리오에 놀아나 줘야 하는가?"
"시나리오 실패 시 조건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자고? 어려운 시나리오도 아닌데 그냥 하자. 실패 시 사망이면 어떡하려고 그래. 성공 보상이 나름 짭짤할 수도 있고."
진작 멸살법 텍본을 확인해본 김독자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유중혁의 1,863회차를 통틀어서 이런 시나리오는 단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제 옆에서 잔뜩 싫어하는 기색을 내비치며 짜증을 내는 유중혁에게 아무 확신도 해줄 수 없었다. 
"... 짜증 나는군."
유중혁은 그리 말하면서도 김독자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에 떠오르는 짜증은 어찌할 생각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김독자는 유중혁이 나가기라도 하는 것에 만족하며 일어났다.


"꽃이라. 이런 곳에 와본 적이 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 난 처음인 것 같네."
김독자는 살아생전 꽃놀이 같은 것을 가본 적이 없었다. 같이 갈 사람도 없이 혼자 꽃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바에는, 차라리 멸살법 정주행을 하는 것이 더 좋았다. 유중혁은 이런 데 되게 안 올 것 같이 생겨선 이런 데는 언제 와봤대.
"유미아가 같이 오자고 해서 왔었다."
유중혁은 이렇게 덧붙이곤 이곳저곳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뭐야, 유중혁 혹시 독심술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싶었던 김독자 또한 유중혁과 함께 고개를 돌려가며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위험해 보이진 않네. 나름... 기분 좋아지는 풍경이기도 하고. 일행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꽃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모습은 귀여웠다. 일행들에게도 휴식 시간이 필요하겠지. 파트너만 아니었다면 성좌들한테 좀 고마워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옆에서 나란히 걷는 제 파트너에게 시선을 돌린 김독자는, 언제부터 저를 쳐다보고 있던건지  노골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살짝 고개를 돌렸다. 중혁이한테도 도움이 되겠지. 앞으로 이렇게 멸망하기 전 기분을 낼 수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

 

 한참을 걸어 다녀도 시나리오는 클리어 되지 않았다. ... 왜지?
"중혁아, 시나리오가 왜 이렇게 안 깨질까?"
"... 멍청한 건가, 생각을 안 하는 건가?"
사이좋게 눈썹을 모은 유중혁은 한숨을 내쉴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대답을 곧 대신한 것은 우리엘의 간접메시지였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제대로 놀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제대로 노는 게 뭐죠?"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제대로 노는 것이란 자고로 ■■이나 ■■ ■■ ■■ ■■■■ ■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성좌, 하늘의 서기관이 지엄한 눈빛으로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를 쳐다봅니다.]

 

저 대천사들은 매일 와서 채널에서 싸우는 게 일인가. 우리엘은 이번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중혁아, 보통 이런 데 오면 뭐하냐?"
"멍청한 거였군. 얼굴 위에 달린 그 눈이 장식이 아니라면 주변 사람들을 좀 둘러봐라."
우리 중혁이가 말을 이제 너무 험하게 하기 시작했어... 김독자는 속으로 한탄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먼저 보인 것은 유상아가 한수영의 머리 위에 꽃을 잔뜩 올려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었다. 도깨비 보따리에서 별걸 다 파네. 유중혁과는 절대 저런 걸 할 수 없다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음으로 보인 것은 떨어진 꽃잎을 서로에게 마구마구 던져대는 신유승, 이길영, 유미아였다. 애들이라서 그런지 분명 싸우는 것일 텐데도 멀리서 보니 화보 같았다. 김독자는 한숨을 쉬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중혁이 꽃잎을 던진다면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현성과 정희원은... 유상아와 한수영과 비슷했다. 이지혜와 장하영은 도대체 어딜 간 건지 보이질 않았다. 야, 이걸 어떡하냐? 음... 저거라도 해야겠다. 김독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떨어진 꽃 한 송이를 주워들었다. 유중혁은 그런 김독자의 행동을 주시하다가, 까치발을 들고 그 꽃을 제 머리 위에 얹는 김독자를 노려봤다.
"중혁아, 넌 왜 꽃도 잘 어울리냐?"
김독자를 한참을 노려보는 유중혁의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말했다. 유중혁은 머리를 흔들며 꽃을 털어버리려다 한숨만 쉴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김독자는 당연히 유중혁이 한숨 다음에는 꽃을 떼어버리던가, 제 멱살을 잡고 집어던진다거나, 발로 걷어찰 줄 알았기에 의외의 반응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김독자에게 호기심을 가득 안겨준 장본인인 유중혁은 잠깐 고민하다가 밑에 있는 가지에서 벚꽃 한 송이를 따다가 김독자의 머리 위에 얹었다. 
"... 중혁아, 너 원래 안 이러잖아?"
김독자는 잔뜩 당황해서는 원래라면 속으로 중혁아, 너 이거 캐붕이다? 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을 겉으로 내뱉었다. 
"시나리오 클리어에 협력하는 것뿐이다. 네놈 말대로 실패 시 페널티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놓고 있는 건 멍청한 짓인 것 같군."
역시, 우리 중혁이가 그렇지. 살짝 들떴던 기분 탓에 붉게 달아오른 뺨이 누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가라앉았다. 잠깐이라도 두근거릴 뻔했는데 바로 멈추는 듯했다. 말이라도 곱게 하면 몰라, 툭하면 '네놈 죽인다.', '네놈은 왜 이렇게 멍청하지?'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예쁘게 봐주려 해도 봐줄 수 없었다.
 유중혁은 한숨을 쉬며 김독자의 귀 뒤로 머리를 넘겨주고 꽃을 꽂아줬다. 유중혁은 만족했는지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김독자는 간접메세지에서 시끄럽게 울부짖어대는 우리엘을 언제나 그랬듯 가볍게 무시하고, 네가 웬일이냐는 눈빛으로 유중혁을 바라봤다.
"꽃이라도 있으니 못생긴 얼굴이 좀 더 볼 만하군."
유중혁 개새끼.

 

 별별 짓을 다 해도 시나리오는 클리어 되지 않았다. 우리엘의 입김이 들어간 시나리오가 평범한 방법으로 클리어 되리라 생각한 게 이상한 일이었을까. 어째서인지 생긴 벤치에-아무래도 성좌들이 한국의 문화를 열심히 조사한듯했다-앉아있는 유중혁은... 신기했다. 자신이 봤던 멸살법의 유중혁은 수많은 회귀 탓에 지친, 일상과는 멀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유중혁이 멸망한 세계에서이긴 했어도, 평범한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유중혁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유중혁이 뭐가 안 어울리겠냐마는, 벚꽃과도 어울리는 것은 생각도 못 했다. 애초에 벚꽃-유중혁은 김독자가 생각할만한 조합이 아니였다. 멍하니 유중혁을 쳐다보던 김독자는 유중혁과 시선이 마주치자 웃어 보였다. 유중혁, 예쁘네. 꽃 사이에 서 있으니 가끔 밉게 여겨지던 녀석이 예쁘게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메세지가 도착했다.

 

[서브 시나리오 #803이 종료되었습니다!]
[보상 정산이 시작됩니다!]

 

순식간에 떠오른 메세지에 일행들은 의아해했다. 이것은 유중혁도, 김독자도 마찬가지였다. 김독자는 황급히 시나리오 창을 다시 확인했다.

 

<서브 시나리오 #803-꽃놀이>
분류: 서브
난이도: F
클리어 조건: 성좌들이 한반도의 화신들을 위해 개연성을 모아 '유중혁-김독자 공단'에 봄을 내려주었습니다. 만개한 벚꽃에서의 꽃놀이를 정해진 파트너와 함께 마음껏 즐기십시오.
클리어를 위해선 파트너가 예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제한 시간: 없음
클리어 보상: 100000 코인
실패 시: ??

 

아무리 시나리오 후반이라고 그래도 서브시나리오에 이렇게나 많은 코인이 보상인 건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무시하고, 클리어 조건에 새로 생긴 문장에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뭐, 예쁘다고 생각해? 그게 '그' 유중혁한테 가당키나 한 소리인지 모르겠다. 아까부터 못생겼다고 줄기차게 까댄 놈이 날 예쁘다고 생각한다고? 김독자는 미간을 좁혔다. 지나치게 말도 안 되는 말이라 생각한 탓이였다. 김독자는 자신이 유중혁을 예쁘다 한 것은 10년 최애가 가끔 예쁘게 느껴질 수도 있지, 라고 정당화 할 수 있었으나 유중혁의 경우에는 달랐다. 유중혁을 노려봐도 나오는 답은 없으니 한숨밖에 쉴 수 없었다. 유중혁은 시나리오 창을 확인하지 않은 듯 했는데, 굳이 말해서 김독자가 자신을 예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릴 필요는 없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앞으로 이런 벚꽃은 느낄 수 없을테니 잠시나마 즐겨보라고 합니다.]

 

 김독자의 상념을 방해한 것은 우리엘의 간접메세지와 옆에 있는 유중혁의 따가운 시선이였다. 김독자는 도깨비 보따리를 열어 카메라를 구입했다. 
"중혁아, 저기 서봐!"
김독자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벚꽃나무 밑이였다. 유중혁은 미간을 좁히다가도 김독자의 말대로 순순히 밑에 가 서주었다. 김독자는 그런 유중혁의 사진을 마구마구 찍었다. 회귀 우울증이라도 오면 보여줘야지, 라고 다짐하며 사진을 찍던 김독자는 슬슬 사라지는 배경에 아쉬워했다.
 그런 김독자를 바라보던 유중혁은 얼굴을 찌푸렸다.
"... 네 사진은 안 찍나?"
유중혁은 김독자에게서 카메라를 뺏어들어 근처에서 놀던 이지혜에게 던져주었다. 이지혜는 카메라를 날렵하게 받아냈으나 뭘 하라는 건지 의아해했다. 유중혁은 사진 좀 찍어달라 말하곤 나무 밑으로 김독자를 끌고 갔다.
"그럼 찍을게요! 하나, 둘, 셋!"
이지혜의 외침과 함께 찍힌 사진은 상당히 잘 나왔다. 김독자와 유중혁은 답지 않게 좁은 카메라 화면에 집중하여 모여있었다. 
김독자는 사진의 유중혁이 자신을 다정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을 보며, 어쩌면 유중혁이 자신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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